[멍멍 에세이-⓻ 추가 버전] 사과만 보이면 '맹수'로 돌변하는 말티즈
상태바
[멍멍 에세이-⓻ 추가 버전] 사과만 보이면 '맹수'로 돌변하는 말티즈
  • 이슈밸리
  • 승인 2026.09.27
  • 댓글 0
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해 만든 생성형 AI 이미지 

 

[이슈밸리=말티즈 장군 기자] 지구상의 수많은 소리 중, 냉장고 야채칸이 열리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보다 내 심장을 더 거칠고 빠르게 뛰게 만든다.

다들 내가 식탁 위에서 고기나 치킨 냄새를 맡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꼬리를 칠 거라 상상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인간들의 편견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아빠와 엄마가 식탁에서 기름진 치킨을 뜯든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을 굽든 내 반응은 언제나 감흥 없는 SO-SO다. 주면 고맙게 먹고 안 주면 그만인, 아주 초연한 도인의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사과의 영역으로 단 한 걸음만 넘어가는 순간, 내 안의 이성과 교양은 단 1초 만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주방에서 잘생긴 아빠가 사과를 꺼내는 기척, 껍질이 깎이는 그 사각사각 청량한 ASMR 소리는 안방 깊은 곳 이불속에서 딥슬립을 하다가도 소름 돋게 캐치해 내는 나만의 특급 레이더망에 완벽히 포착된다. 사과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나의 레이더는 단 한 순간도 꺼지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박박 긁고 기어코 기어나와 사정없이 목청껏 짖어댄다. 빨리 줘, 빨리 주란 말이야, 왜 너희들만 이 천국의 맛을 독점하는 거야, 대충 이런 항의의 의미다.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사과에 미쳐 살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어릴 적엔 남들처럼 고기 위주로 많이 먹던 육식파였으니까. 아마도 건강을 위해 사료 위주로 식단이 강제로 바뀐 그 슬픈 날들 이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언젠가 호기심에 한 조각 얻어먹은 사과는 꿀맛이라는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치 천국을 유영하는 듯한 환상적인 기분이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사과 타령을 운명처럼 시작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내가 안방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어도 아빠가 냉장고 문을 열고 수천 가지 다른 음식을 꺼낼 때는 눈도 깜짝 안 한다는 것이다. 오직 사과를 꺼낼 때만 그 미세한 공기의 결을 알아차린다. 필(Feel)이라고 해야 할까.

사과 다음으로 내 온몸의 감각을 바짝 세우게 만드는 품목들도 존재한다. 고기에는 감흥이 없어도 사과류 이하의 과일이나 때로는 야채를 만질 때 내 오감은 최고조로 살아난다.

굳이 사과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일을 꼽으라면 배, 수박, 참외, 토마토가 있고, 야채 코너로 넘어가면 무, 당근, 배추까지 아주 알차게 섭렵한다. 나도 왜 이렇게 채소와 과일에 집착하는지 알 수는 없다. 어릴 적부터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다만, 철저한 생존 법칙은 하나 있다. 엄마가 누차 경고하기를, 포도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포도 속에 들어있는 치명적인 성분 때문에 잘못하면 내 심장이 멈출 수 있다고 겁을 줬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포도가 식탁에 올라올 때는 짖지도 않고 또 가만히 침대에 엎드려 있다. 비록 사과에는 눈이 멀어도, 오래오래 이 집에서 살아남으려는 나의 본능적인 타협이랄까.

아무튼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온통 머릿속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다. 아빠가 지금 식탁 쪽으로 가느냐 주방 쪽으로 가느냐가 내 하루의 유일한 관심사다.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집, 하지만 주방 야채칸 앞만큼은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소용돌이치는 전쟁터이자 천국이다. 자, 이 긴 글은 이쯤 하고, 이제 그만 뜸 들이고 사과 한 조각 내어놓으라. 짖기 전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