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르무즈 앞에서 오락가락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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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호르무즈 앞에서 오락가락할 때 아니다
  • 이슈밸리
  • 승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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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본관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슈밸리=사설] 호르무즈 해협 대응을 둘러싼 정부의 메시지가 혼선을 빚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항행의 자유와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한 국제공조를 강조했지만, 청와대는 곧바로 파병이나 구체적인 참여 방식은 정해진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가 현지 조사단까지 파견했는데도 단순한 검토 과정일 뿐이라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신중한 검토와 오락가락하는 태도는 다르다. 군 병력의 해외 파견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가 걸린 문제인 만큼 충분한 검토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서 어느 정도의 원칙과 선택지를 마련했다면 국민에게 일관된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 국방부의 발언이 제각각으로 들리면 외교적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측이 오는 11월까지 한국의 입장을 정리해 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정부의 최종 대응 방향도 그전에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참여 여부와 임무 범위, 지휘체계, 병력 보호 대책, 국회 동의 절차를 놓고 공개적이고 책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반드시 전투병력을 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상 감시와 정보 공유, 의료·수송·군수 지원, 연락장교 파견 등 위험을 줄이면서 국제사회의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파병도, 여론을 살피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아닌 국익에 기반한 분명한 선택이다.

한국 외교의 기본축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성장했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 앞에서는 한미동맹을 핵심 안보 기반으로 삼아왔다. 미국은 선언적인 우방을 넘어 실제 병력과 전략자산, 확장억제를 통해 한국의 안보를 뒷받침하는 동맹국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미·중 사이에서 강조됐던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이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기보다 양측의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와 원만하게 지내겠다는 희망만으로 안보를 지킬 수는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누구와 연대하고 어떤 원칙을 지킬 것인지 분명히 해야 상대국도 한국을 신뢰한다.

동맹의 신뢰는 특정 대통령 한 사람과의 친분이나 감정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어려울 때 미국의 지원을 기대한다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위기에 놓였을 때 한국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을 나눠야 한다. 이번에 한국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 외교·안보 당국에도 하나의 외교적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훗날 한반도에 심각한 안보 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정부와 의회가 한국 지원을 결정하면서 동맹국으로서 한국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동맹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평소 책임과 부담을 함께 나누면서 유지되는 관계다.

물론 이란의 반발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한국 선박과 교민의 안전, 원유 수급, 양국 외교 관계를 고려해 이란과의 소통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란의 경고가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좌우하도록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란의 강경한 위협에 움찔해서 동맹국과의 공조를 주저하는 모습은 더 큰 외교적 비용을 부를 수 있다.

정부는 여론에 따라 말을 바꾸는 듯한 모습을 자제해야 한다. 전투 참여는 신중하게 판단하되, 항행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비전투 분야의 제한적 기여까지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어느 정도의 불편과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동맹국의 합리적인 요청에 책임 있게 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정부는 굳이 11월까지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국익과 동맹, 현장 위험을 종합한 참여 원칙을 조속히 세우고 국민과 국회에 설명해야 한다. 모호하게 이리저리 시간을 끌 수록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한국에 실망할 수 있다. 국제정상회의에서 한국 대통령이 외톨이 되는 모습은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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