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청라 돔구장 건립…기존 구장 냉방시설 확충 불가피
닫힌 돔의 한계 보완할 자연광·바람·빗소리 연출도 주목
[이슈밸리=디지털뉴스팀] 기록적인 무더위가 한국 프로야구의 오랜 관행마저 바꿔놓고 있다. 비가 아닌 폭염으로 프로야구 전 경기가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돔구장 확대와 기존 야구장의 냉방시설 강화가 더는 선택이 아닌 과제로 떠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KBO리그의 첫 폭염 취소는 2024년 8월 2일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예정됐던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였다.
그러나 2026년 8월에는 폭염으로 1·2군을 포함한 전국의 경기가 동시에 중단됐다. 개별 경기 취소를 넘어 더위가 리그 전체를 멈춰 세운 것은 처음이다.
KBO는 지난 5∼6일 예정됐던 10경기를 취소한 데 이어 7∼9일 주말 15경기까지 열지 않기로 했다. 경기 개시 시각도 당분간 오후 7시로 늦췄다. 인천 문학구장 등에서는 관중들이 온열질환 증상을 보여 치료받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프로야구는 지금까지 장마와 태풍, 미세먼지를 주요 기상 변수로 관리해 왔다. 이제는 폭염이 우천 못지않게 일정과 흥행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KBO 규정상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 33도 이상,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하지만 실제 야구장은 관중 밀집도와 인조잔디·콘크리트의 복사열, 높은 습도까지 더해져 공식 기온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야간경기로 시간을 옮겨도 낮 동안 달궈진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는다. 선수뿐 아니라 심판과 경기 운영요원, 응원단, 장시간 관람하는 어린이와 고령층 관중의 안전까지 고려하면 경기 시각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위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도 작다. 기상청 기후변화 상황지도에 따르면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국내 폭염일수는 2025년 20.6일에서 2050년 26.7일, 2100년 95.7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열대야도 같은 기간 12.1일에서 27.1일, 85.2일로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에도 경기 열린 고척돔
폭염 대책을 논의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은 국내 유일의 돔 야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이다. 고척돔은 여름철 냉방시설을 가동해 내부 온도를 대체로 25∼28도 수준으로 유지한다. 폭염이나 장마, 미세먼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경기 일정의 안정성도 높다.
실제로 전국 야외 구장의 경기가 폭염으로 취소되는 동안 고척돔은 실내구장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경기 운영 기준을 적용받았다. 돔구장의 가치가 비를 피하는 수준을 넘어 ‘기후 대응형 스포츠 인프라’로 확장된 셈이다.
돔구장 건설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3만석 규모의 돔 야구장을 포함한 스포츠·마이스 복합시설을 조성해 2032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인천 청라에도 돔구장이 추진되고 있다. 잠실돔이 완공되면 고척을 포함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복수의 실내 야구장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다만 전국 모든 연고지에 돔구장을 건립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막대한 건설비와 냉방 에너지, 유지관리 비용을 고려하면 관중 수요와 지역 재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기존 야외 구장의 냉방 능력을 높이는 방안이 우선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관중석 대형 실링팬과 미스트 냉방기, 냉방 휴게실, 그늘막, 냉수 공급시설을 확충하고 선수 더그아웃과 불펜, 심판 대기 공간에 독립형 냉방설비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향후에는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온도·습도·복사열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경기 지연이나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스마트 폭염 대응 시스템’도 필요하다. 단순히 기상청 발표 기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 내부의 실제 위험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닫힌 돔에 바람과 빗소리를 입힌다면
돔구장은 쾌적하지만 야외 야구 특유의 계절감과 현장감을 잃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하늘과 구름, 자연 바람과 빗소리가 사라지고 냉방기 소음과 폐쇄감이 커질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축 돔구장은 자연광이 들어오는 반투명 지붕이나 부분 개폐 구조, 외부 풍경을 볼 수 있는 대형 유리벽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빛 투과율이 높고 무게가 가벼운 ETFE 소재를 활용해 자연광과 냉방 효율을 함께 확보하려는 경기장이 늘고 있다.
경기 전이나 이닝 교대 시간에는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은은한 바람과 빗소리, 숲과 여름밤의 자연음을 음향 시스템으로 연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공적인 효과를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 돔 안에서도 야외 야구장의 계절감을 느끼도록 하는 일종의 ‘감성 공조’ 개념이다.
강한 송풍은 타구와 투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경기 중 그라운드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대신 관중석 공기 흐름을 세밀하게 조절하고, 경기 전·후 자연음과 조명·영상 연출을 결합한다면 폐쇄형 돔의 단조로움을 줄일 수 있다.
폭염으로 프로야구가 멈춰 선 사건은 단순한 일정 차질이 아니다. 야구장이 비를 피하는 시설에서 더위와 한파, 미세먼지까지 관리하는 사계절형 생활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다.
미래의 야구장은 지붕만 덮는 거대한 실내 체육관이어서는 안 된다. 한여름에도 안전하고 시원하면서, 바람과 빗소리, 계절의 정취까지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돔구장이 한국 프로야구의 다음 과제가 되고 있다.
김도균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교수는 잠실 신축야구장 공개토론회에서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원하는 것은 조망보다 편안한 공간에서 경기를 보는 것”이라며 돔구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돔구장을 건설하면 프로야구뿐 아니라 공연과 문화행사 등을 유치해 시설을 연간 300일 이상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강본 한국교통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도 최근 쏟아지는 돔구장 건립 계획에 대해 “도쿄돔이나 싱가포르돔처럼 365일 돌아가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충분한 운영계획 없이 건설부터 추진하면 적자 확대와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