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말티즈 '장군' 기자] 나에게는 남다른 ‘달란트(능력)’가 있다. 강아지라고 다 같은 강아지가 아니다. 후각이 유달리 발달해 저 멀리 떨어진 간식 부스러기도 찾아내는 ‘탐지견’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다르다. 내 예민함은 오직 ‘귀’로 향한다.
가끔 아빠가 내 앞에 툭 던져준 간식을 냄새로 찾지 못해 코를 킁킁거리며 바닥을 헤매는 건, 내 후각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저 내 집중력이 온통 세상의 소리를 향해 곤두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나만의 거대한 ‘경계 구역’이다. 누나가 거실에서 헤어드라이어의 거센 바람 소리를 일으키고, 아빠가 TV 뉴스 소리를 한껏 높여놓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나는 평온하지 않다. 그 모든 소음을 뚫고 계단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발자국 소리. 그건 침입자의 발걸음이다. 내 몸은 이미 본능적으로 ‘경계 모드’에 돌입한다.
“멍멍! 멍멍멍!”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내 목청이 터져라 짖는 건 단순히 시끄럽게 구는 것이 아니다. 이 집을 지키고, 사랑하는 내 가족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이자,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충성심을 아빠는 몰라준다. 내가 사명을 다하려 할 때마다 아빠는 인상을 찌푸리며 “쉿, 조용!”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억울하다. 아빠에게 멍멍 소리로 따져 묻는다. ‘왜 내 업무를 방해하는 거야? 난 지금 열심히 나라, 아니 우리 집을 구하고 있다고!’
특히 최악의 적은 창밖 숲속의 ‘야옹이 갱단’들이다. 놈들이 풀숲을 바스락거리며 걷거나, 자기들끼리 음흉하게 야옹거릴 때면 내 인내심은 바닥난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다!”라는 마음으로 창문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빠는 기겁하며 창문을 닫지만, 나는 굴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야옹이들에게 ‘여기는 내가 지키는 구역이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니까.
요즘 사람들은 ‘층간 소음’에 아주 예민하다. 내 짖는 소리가 그들에게 큰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지만, 천사 같은 아래윗집 이웃들 덕분에 아직 큰 분란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엄마의 한숨이 유독 길다.
나도 안다. 내가 짖을 때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엄마의 깊은 한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사명감과 가족의 평화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팽팽한 줄타기를 한다. 하지만 기억해달라. 내가 짖는 것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비록 아빠는 ‘조용히 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을 위해 최전방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자, 오늘도 창밖에서 수상한 꼬리 흔들림이 보인다. 사명감이 다시 불타오른다. 아, 정말 어쩌겠나. 이것이 내 운명인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