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밸리=말티즈 '장군' 기자] 어느덧 내 나이 40대, 사람 나이로 치면 제법 중후한 장년의 말티즈 ‘장군’이다. 평일에는 엄마와 느긋하게 동네를 누빈다. 엄마와의 산책길에선 내 꼬리가 마치 헬기 프로펠러처럼 경쾌하게 돌아간다. 세상 모든 냄새가 향기롭고, 길 위의 모든 존재가 그저 반갑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아빠가 현관문 앞에 서서 묵직한 목소리로 "장군아, 산책 가자"라고 외치면, 이상하게도 내 발끝이 바닥에 달라붙은 듯 움직이질 않는다. 꼬리는커녕 온몸이 돌처럼 굳어버린다. 이게 말로만 듣던 ‘아빠 오이디푸스’일까? 아빠와 함께하는 산책은 왜 이렇게 짊어진 짐이 많은 것처럼 어깨가, 아니 엉덩이가 무거운 걸까.
주말 아침 동네 산책로는 그야말로 정글이다. 진돗개, 리트리버 형님들부터 웰시코기, 닥스훈트까지 온 동네 ‘인싸’들이 다 모인다. 서로 반가워 꼬리를 흔들다가도, 험한 세상이라 그런지 눈빛에는 묘한 경계심이 서린다.
그런데 말이다, 같은 종자인 우리 말티즈들을 마주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진다. 100미터 전방에서부터 심장이 쿵쾅거린다. 분명 내 나이 정도면 후배들을 보며 따뜻한 조언이라도 건넬 법한데, 몸은 나도 모르게 ‘너 죽고 나 살자’ 모드로 돌변한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고, 이성은 저 멀리 달아난다.
어릴 적 기억이 문득 스친다. 나도 엄마 아빠 뒤를 졸졸 따르며 동네 말티즈 형들한테 뭣 모르고 대들고 까불었던 그 시절. 그때는 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지. 든든한 보호자 뒤에 있으니 어깨에, 아니 꼬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무서울 게 없었으니까.
궁금해서 집사 형이 잠든 사이 챗GPT 형님께 물어봤더니, 이게 다 ‘사회성’ 문제란다. 예방접종 기간에 세상과 단절되고, 작다는 이유로 늘 품에 안겨 다녔던 탓에 다른 친구들과 섞일 기회가 부족했던 게 화근이었다고. 거기다 같은 말티즈는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특히 수컷끼리는 영역 의식이 강해 신경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과학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맞는 말이다. 엄마와 산책할 땐 마음이 홀가분해 덜 예민한데, 아빠와 나가면 왠지 모를 긴장감 때문인지 같은 말티즈만 보면 날이 선다. 든든한 아빠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아니면 아빠 앞에서 더 강해 보이고 싶은 철없는 질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말만 되면 무거워지는 다리와 엉덩이. 이게 정말 나이 탓일까, 아니면 매주 되풀이되는 이 묘한 기싸움 탓일까. 오늘 아침도 아빠는 신발 끈을 묶으며 나를 부른다. "장군아, 나가자." 휴, 일단 나가긴 해야 하는데, 이번 주말은 제발 말티즈 동생들과 조용히 스쳐 지나갈 수 있기를.

